추 · 성 · 훈

이번주 패떳(패밀리가 떳다)에 K-1에서의 터프한 모습을 벗고 아주 친근한 모습으로 대성이와 머리 밀기를 하며 소년같은 웃음을 짓는 대한민국 대표 '훈남(훈훈한 남자)'
저번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도 그의 과거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 냄새를 풍겼던 모습이 옆집 형같고 동생같은 친구라는 느낌이었다.

2000년 이후 가장 선명한 트렌드의 하나는 '예쁜 남자 신드롬'이다. 따뜻한 매너와 부드러운 외모를 가진 남자들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반면 마초적 남성성은 악마적 이미지와 동치된다.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터프가이 최민수가 2000년대 들어 '홀리데이'나 '태왕사신기'에서 맡았던 역할을 떠올려 보라. 이 와중에 수염 텁수룩한 근육질의 격투기 선수가 훈남으로 떠오르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 남자, 자주 보인다. '꽃미남'과는 거리가 먼 터프한 외모나 발음조차 어색한 어눌한 말투로 봐서는 도대체 광고 모델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최근 CF계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단다. 섹시스타 엄정화가 이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밝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가 부른 '하나의 사랑'이란 노래가 다시 인기다. 전문 모델도, 연예인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었을 것이다, 저 사람 누구야?
 



추성훈. 재일교포 4세 이종격투기 선수.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유도 선수로 성장했지만 일본에서는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에 와서는 파벌과 학벌에 밀려 실력을 인정 받지 못했다. 결국 유도를 계속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귀화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하여, 한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K-1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활동 중이다.

추성훈이 한국 연예계에서 주목 받게 된 것은 지난 2월 '무릎팍도사'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서부터다. 그는 어눌하지만 솔직한 언변과 담백한 노래 솜씨로 살벌한 격투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출연 하나로 일거에 '귀화한 배신자'에서 대한민국 대표 '훈남(훈훈한 남자)'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류에 반발해 신선한 재미 추구하는 反트렌드 


먼저 '카운터 트렌드(counter trend)'로 설명이 가능하다. 특정한 트렌드가 압도적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그와는 반대되는 현상이 관찰될 때 그것을 카운터 트렌드 혹은 반(反)트렌드라고 부른다. 미래 지향적이고 세련된 취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복고나 키치(kitsch) 풍의 유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카운터 트렌드는 일부의 소비자들이 주류 트렌드에 대해 반발하여 신선한 재미를 추구할 때 등장하곤 한다.

추성훈 코드 역시 연약한 꽃미남 열풍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그 반발로 터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열광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터프가이들은 그 동안 추성훈처럼 카운터 트렌드를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다시 말해서 왜 추성훈인가?

추성훈 코드의 두 번째 요소인 '자웅(雌雄) 동체성(hermaphrodit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원래 자웅 동체란 암수 양쪽의 생식소를 가지는 '암수 한몸'을 일컫는 용어이지만, 트렌드학(學)에서는 하나의 현상 또는 아이콘이 상반되는 특징을 동시에 보유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달팽이가 이에 속한다. 달팽이는 암수에 상관없이 두마리만 있으면 알을 낳는것이다.

추성훈의 첫인상은 살벌한 격투기 선수의 그것이지만, 내면에는 천진난만한 부드러움이 숨어있었다.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단지 그가 터프해서가 아니라, 야수성과 소년성이라는 자웅을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소비가치의 핵심은 바로 모순된 것의 공존에 있다. 다양한 기능을 작은 기기에 담아야 하고, 복잡한 성능일수록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아름다운 스타일에 강한 힘을 가진 자동차나, 영양이 듬뿍 들어있으면서도 맛있는 우유를 원한다.

히트상품의 조건이란 이러한 모순된 요구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트렌드 속에서 추성훈과 같은 융합적 캐릭터는 광고 모델로 제격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광고 모델뿐만 아니라 제품 자체가 소비자들의 상반된 요구를 자웅 동형적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야수성에 천진난만한 소년성 함께 지녀 

세 번째 열쇠 말(키워드)은 '무국적성(statelessness)'이다. 독도 문제로 요즘처럼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인물이 계속 광고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과거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추성훈의 국적에 관한 복잡한 개인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한 일본 브랜드의 상품을 홍콩에서 구매하는 다국적 소비사회에서 국경의 의미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정경분리(政經分離) 아니, 정소분리(政消分離)라고 할까? 반일과 반미를 격렬하게 외치다가, 돌아서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본 드라마를 다운로드 받고, 미제 청바지를 구입하는 세대에게 추성훈의 귀화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상품의 국적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추성훈 열기에 녹아있는 소비 트렌드의 코드들은 그의 캐릭터만큼이나 복합적이다. 이러한 현상이 몇 년을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갈지, 아니면 몇 개월 후면 사그라질 '패드(fad·일시적 유행)'에 불과할 것인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추성훈 현상의 지속 여부와 관계없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반발성·자웅동형성·무국적성과 같은 '추성훈 코드'를 상품과 서비스에 담아내야 한다는 새로운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는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에서 소비자심리·행태 및 소비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출처]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노트'] 꽃미남 전성시대에 터프가이가 떴다 왜 추성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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